신용등급 대신 신뢰를 보는 청년자조금융단체
생활고로 요절한 청년의 죽음이 설립 계기 돼
윤승준 기자(sjyoon@skyedaily.com)
기사입력 2020-10-30 06:48:31
▲ 청년연대은행토닥은 조합원들의 출자금으로 자조기금을 조성해 소득증빙과 신용등급을 요구하지 않는 무보증 무담보 소액대출사업을 운영하는 청년자조금융단체다. 사진은 청년연대은행토닥의 정기총회 모습. [사진제공=청년연대은행토닥] “청년연대은행 토닥은 조합원들의 출자금으로 자조기금을 조성해 무보증 무담보 소액대출사업을 운영하고 있어요. 소득증빙과 신용등급으로 상환가능성을 평가하는 기존의 금융문법 대신 일대일 재무 상담을 통해 대출을 신청한 청년의 삶을 나아지게 할 수 있는지를 심사하죠. 대출 수혜자가 다시 대출 공여자가 되는 토닥의 순환 시스템 안에서 청년들 간의 관계 회복력을 키울 수 있는 생활안전망 역할을 수행하고자 해요.” 청년 빈곤 문제가 신용불량과 파산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학자금 대출 후 6개월 이상 이자를 연체한 신용불량자 수가 작년에 4만6195명으로 확인됐다. 2015년부터 최근 5년간 장기연체 인원과 금액도 각각 1.7배, 1.9배 증가했다. 대학 재학 중 학자금과 생활비 대출로 시작해서 졸업 후 취업난, 저소득·신용, 고금리 대출 및 연체, 신용불량 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명 ‘부채세대’의 탄생이다. 청년 빈곤 문제가 어제오늘 나온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와 국회는 청년 일자리 정책에만 몰두한 채 청년 금융 실태를 외면한다. 일자리만 얻게 되면 만사형통으로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고 보는 눈치다.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청년들을 구제할 제도적 장치가 부실한 현실을 망각한 것이다. 이러한 청년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단체가 있다. 바로 청년자조금융단체 ‘청년연대은행 토닥’이다. 2013년 설립된 청년연대은행 토닥은 조합원 370명과 함께 자조기금을 조성해 무담보 소액대출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임의단체다. ‘토닥’의 뜻에 공감하는 15세~39세 청년이면 누구나 가입이 가능하다. 사회초년생 또는 구직 중인 취업준비생, 대학생, 프리랜서 등 금융소외계층 청년들과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는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토닥 사무실을 찾아 장지희 사무국장과 만나 단체의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회안전망을 만들고자 탄생 토닥이 설립된 계기는 2011년 어느 한 청년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32세의 일기로 사망한 사건이었다. 요절한 청년은 2006년 단편영화 ‘격정소나타’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던 최고은 작가였다. 최 작가는 쪽지에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을 좀 두들겨 주세요’라는 내용을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며칠 동안 굶주린 상태에서 쓸쓸히 숨진 것이다. “당시 청년유니온이라는 단체에서 사무국장을 하던 초대 이사장님이 그 소식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으셨어요. 21세기에 쌀이나 김치가 없어서 죽는 청년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던 것이었죠. 그때 내부 조합원들에게 ‘혹시 생활고에 시달리는 분이 있느냐’고 물으셨어요. 근데 생각보다 쌀이 부족하다는 분들이 많이 계셨어요. 그래서 ‘청년들이 빚을 지지 않는 생활을 할 수 있게끔 사회안전망을 만들자’는 차원에서 토닥을 설립하게 됐죠.” ▲ 토닥은 '청년들이 빚을 지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게끔 사회안전망을 만들자’ 라는 차원에서 설립됐다. 사진은 장지희 청년연대은행토닥 사무국장. [사진=서종민 기자] 사회안전망을 만들고자 설립된 토닥의 주요 사업은 청년을 대상으로 한 소액 대출이다. 그들은 조합원들의 출자금으로 모은 공동체 기금에서 돈이 필요한 청년들에게 무담보·자율이자로 대출해준다. 대출 상품으로는 ‘토닥대출’ ‘범위 내 대출’ ‘비상금대출’ ‘둥지-협동응원대출’ ‘청년 사회주택 보증금대출’ 등 5개가 있다. 우선 ‘토닥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먼저 조합원에 가입하고 ‘토닥학개론’을 이수한 뒤 최소 6개월 이상, 출자금 10만원 이상을 납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출자횟수가 7회라면 최대 70만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최대 가능한 금액은 150만원이다. 최근에는 본인출자금의 130%까지 대출받을 수 있는 ‘범위 내 대출’이 생겨났다. “‘범위 내 대출’은 오랫동안 출자금를 납부한 분들을 위해서 본인출자금의 130%까지 대출이 가능하도록 만든 거예요. 150만원으로 한도가 정해진 토닥대출의 단점을 보완한 거죠. 또 최근에는 ‘비상금 대출’도 만들었어요. 토닥에서 대출을 한 번 이상 이용한 조합원에 한해서 비대면으로 이용할 수 있는 대출상품이죠. 신청하면 조건에 맞는지 확인한 후 승인되는 형태예요.” “또 ‘둥지-협동응원대출’이라고 해서 조합원 2명이 조건 충족을 하면 3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한 상품도 있어요. 그 다음에 업무협약(MOU)을 맺은 동작신협에서 보증금 명목으로 최대 2000만원까지 대출할 수 있는 ‘청년 사회주택 보증금대출’ 상품도 있죠.” 대출 과정에서 필요한 토닥학개론은 조합원 교육이다. 조합원이라면 누구나 수강해야 하고 이것을 들어야만 대출신청이 가능하다. 코로나 이전까지는 매월 개최하다가 코로나 이후엔 두 달에 한 번씩 진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토닥학개론에서는 토닥에 대한 기초적인 교육을 해요. 토닥이 생기게 된 동기와 기금을 이용하는 방법 등을 가르치죠. 저희는 채권추심을 하지 않아요. 그래서 교육을 통해 ‘이 기금은 누구한테 지원받은 게 아니라 우리가 모은 기금이기 때문에 서로 잘 갚아야 할 의무가 있다’는 구호를 주지시키죠.” 조합원들의 책임감이 만든 낮은 손실율 상환율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했다. 토닥의 뜻에 공감할 수 있지만 사람의 선의에만 기대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는 기우였다. 토닥 대출의 상환율은 무려 88%나 됐다. 회계연도 안에 채권을 소각하지 않은 채 장기간 상환을 받고 있던 것이다. 이러한 조합원들의 책임감에 토닥은 손실율을 낮출 수 있었다. “저희는 복지기관이 아니라서 무상으로 돈을 줄 수는 없어요. 빌려주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죠. 손실율을 고민해야 하기 때문에 대손충담금을 매년 적립하고 있어요. 되도록이면 부실채권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상환을 독려하죠.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되는 분들은 대손처리를 해요. 하지만 지금까지 대손처리한 분은 다 합쳐도 10명이 채 안 돼요. 나머지 분들은 오래 걸리더라도 다 갚아나가요. 굉장히 신기한 점인 것 같아요. 이게 다 같은 뜻을 가진 조합원분들 덕분이죠.” 이자 방식 또한 자율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급여명세서나 신용등급 등을 요구하며 정률적인 수치로 이자를 결정하지 않고 조합원이 자율적으로 이자를 납입할 수 있다. “한 대학원생 조합원이 있었어요. 그분은 돈으로 이자를 납부하기보다는 지금 연구하고 있는 분야에 대한 재능기부로 이자를 납부하겠다고 했죠. 또 어떤 분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나누면서 이자를 납부하기도 했어요. 만일 재능이나 물건이 없다면 매월 납부할 수 있을 만큼 약정을 해서 이자를 납부할 수 있어요. 이게 바로 자율적 이자납부 방식이죠.”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처럼 스스로 개척 ▲ 15세~39세 청년이면 누구나 가입이 가능한 토닥은 사회초년생 또는 구직 중인 취업준비생, 대학생, 프리랜서 등 금융소외계층 청년들과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진은 조합원 대상으로 '토닥학개론'을 교육하는 모습. [사진제공=청년연대은행토닥] 장지희 사무국장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로 코로나 초창기에 토닥 대출 상담이 급증한 사례를 꼽았다. 정부의 재난지원금 행정 처리가 지연되면서 토닥 대출로 생활비를 해결한 청년들이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토닥이 정부의 역할을 대신한 셈이었다. “3월부터 대출신청이 굉장히 폭증하기 시작했어요. 프리랜서, 카페 알바를 하던 분들이 굉장히 직격탄을 맞았던 시기였죠. 다들 ‘곧 끝나겠지’라는 마음이 컸대요. 그래서 평상시와 똑같이 다른 데서 대출받아서 썼죠. 근데 코로나가 종식될 기미가 안 보이자 대출 신청이 엄청 늘었어요. 대부분 재난지원금보다 토닥 대출이 빨라서 오신 분들이었죠. 토닥 대출로 한 고비를 잘 넘기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뿌듯했어요.” 이러한 뿌듯한 경험에도 토닥은 운영비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토닥이 지닌 가치를 지키기 위해 외부 기금을 거부하고 조합비·출자금 금액을 크게 늘릴 수 없어 겪는 고난이다. 현재 상근 직원을 추가로 채용하기도 벅찬 상황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토닥은 임의단체에서 사단법인으로 전환해 다양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법인 전환을 고려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임의단체로 할 수 있는 사업이 굉장히 제한적이기 때문이에요. 조건이나 자격부터 안 되는 사업이 굉장히 많죠. 정부의 인건비 지원도 임의단체는 제외된다는 것도 영향을 줬어요. 해외에서는 복지 성격의 그라민뱅크(Grameen Bank)라는 곳이 많아요. 공적자금이나 후원을 통해 운영되는 단체죠. 토닥 같은 사례는 해외에도 없어요. 그래서 무리 중 제일 먼저 바다에 뛰어드는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 같은 느낌으로 저희 스스로 개척해 나갈 생각이에요.” 장 사무국장은 7년간 토닥이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조합원의 유대감을 꼽았다. 단순히 돈만 빌리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로서 시너지를 내며 연대의식으로 힘을 모았다는 얘기다. 끝으로 그는 토닥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금융사각지대에 있는 청년들이 막막한 절망감에서 빠져나와 경제적 안정을 이루도록 마중물 같은 역할을 하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청년 빈곤 문제를 해결하자는 마음 하나로 시작한 토닥이 7년 동안 유지될지는몰랐어요. 그 사이에 청년을 위한 금융상품들도 많이 생기긴 했죠. 카카오뱅크의 비상금대출도 쉽게 대출을 해주더라고요. 하지만 상환을 해야 하는 조급함이 없고, 연체가 됐을 때 자유롭게 조정이 가능한 대출은 토닥뿐이죠. 또 카카오뱅크에서 대출해주는 300만원이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르는 자금인 반면에 토닥의 대출은 청년들이 서로 모은 자조기금이라는 점이 특별한 것 같아요. 예전에 비해 빈곤청년이 많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청년이 금융사각지대에 놓여 있어요. 그런 청년들의 경제적 안정을 위해서라도 아직은 토닥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원문보기 : “금융사각지대 청년들에게 ‘토닥’이 필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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